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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님의 ‘희망 처방전’

산물소리 2011. 2. 21. 19:04

 


동병상련

시간이 흘러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은 암입니다. 백혈병입니다.” 이런 확진을 내려야 하는 순간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가 무너지는 모습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 그런데 김성두 임상강사는 그 순간 무너지는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서 혈액내과 의사가 됐다. 이 세상 누구보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백혈병을 이겨내고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자신을 보여주며 희망을 처방해주려는 것이다.


백혈병 환자가 되다

2005년 서울아산병원 내과에서 전공의 과정을 끝낸 그는, 그 해 5월 속리산 아래 작은 병원에서 공중보건의 근무를 시작했다. 산사에 가을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한마디 했다. 비련의 주인공처럼 왜 이렇게 살이 빠지고 창백하냐고. 친구 말은 사실이었다. 예전과 달리 운동할 때 숨도 조금 찼다. 아는 게 병이라고 여러 가능한 감별 진단명들이 머릿속을 지나갔고, 모두 부정하고 싶었기에 검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터였다.

친구의 반 강압에 다음날 혈액검사를 했다. 우려했던 데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모든 혈액 수치가 떨어져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길로 간단히 가방을 꾸려 서울로 올라왔다. 그가 찾아간 곳은 반 년 전까지 자신이 근무했던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검사 결과 내려진 병명은 ‘급성 백혈병’이었다.


벼랑 끝을 돌아오다

환자가 되어 병실에 누워있으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주치의 이제환 교수(혈액내과)가 회진 때마다 어깨를 따뜻하게 두드려 주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한시도 아들 곁을 떠나지 않는 어머니의 늘어난 주름살도 보였다.

무엇보다 전공의 시절에는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보였는데, 환자복 안에 숨어있는 야윈 마음을 알게 됐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백혈병 환자라는 사실만으로 괜히 죄스럽고 한없이 작아진 것이다. TV를 통해 동남아의 멋진 해변을 봐도 눈물이 났고, 연금 보험을 드는데도 용기를 낼 수 없었다. 혜택 많이 주는 인터넷 3년 약정도 가입하지 못했다. 3년 후란 시간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그를 더욱 주눅들게 했다. 손등, 입안에 작은 상처가 생기면 혹시나 하는 걱정에 며칠씩 밤잠을 설쳤고, 사랑이 찾아왔을 때도 달콤한 프로포즈와 함께 재발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정말 세다. 그녀의 대답은 자존감이 떨어진 그를 일으켜주었다. “그럼 더 빨리 결혼해야겠네요. 하루라도 더 같이 있어야죠.”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두 사람은 동남아보다 더 멋진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암은 일반적으로 치료종료 후 5년이 지나면 완치판정을 받는다. 치료 종료 후 5년이 된 그는 현재 주기적으로 혈액 검사만 받고 있다.


아버지의 눈물

김성두 임상강사의 아버지는 대학교수를 역임한 비뇨기과 의사다. 교수시절, 제자나 후배들에게 엄하기로 소문난 호랑이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투병하는 동안 아들에게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주시며 느티나무처럼 담대하셨다. 그런데 아들은 얼마 전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연말, 한 모임에서 아버지가 근무했던 병원의 혈액내과 의사를 만났다.

아버지 후배인 그는 김성두 임상강사가 투병할 때 아버지가 아들의 검사 결과지를 들고 여러 번 자신을 찾아왔었다고 했다. 살 수 있냐고 몇 번이나 되물으셨고, 그때마다 눈물을 보이셨다고 했다. 다른 사람 병은 고쳐주면서 아픈 내 새끼를 위해서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
엄한 어른이… 제가 정말 불효자죠. 이제 건강해졌으니 효도해야죠.” 아버지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들어오면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볼 뿐이다. 김성두 임상강사도 내년 6월이면 그런 아버지가 된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는 이렇게 말했단다. “우리 아가를 위해 내가 더 살아야겠네.” 뱃속의 아기는 아빠와 달리(?) 아주 효자인 것 같다.

야윈 마음을 보듬어주는 의사

2009년 3월, 그는 환자복이 아닌 흰 가운을 입은 의사의 모습으로 우리 병원 진료현장으로 돌아왔다. 전공의 시절 심장내과에서 수련을 받은 그는 내과 수석 레지던트를 할 정도로 선후배의 신망이 두터웠다. 그러나 다시 병원으로 돌아올 때 진료과목을 혈액내과로 바꾸었다. 백혈병 환자들에게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진심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아팠던 기억조차 떠올릴 여유 없이 바쁜 일상이지만, 그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 투병할 때 환자복 아래 숨어있던 야윈 마음을, 그 마음을 보듬어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던 다짐을 말이다. 그는 암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환자가 있으면 자신도 백혈병 환자였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최선을 다해 함께 가겠노라는 한마디도 잊지 않는다.

필자는 그의 회진을 따라가 봤다. 림프종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오면서 서툴게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린다. 이제환 교수처럼 따뜻하게 어깨를 토닥여 드리고 싶지만, 버릇없어 보일까봐 그랬다며 사람 좋게 웃는다. 그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진심을 환자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암치료법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무릎이 꺾이는 시련을 만나면 어떤 사람은 주저앉고 말지만, 어떤 사람은 꽃 한송이 꺾어 더 빛나는 모습으로 일어서기도 한다. 자신의 병을 치료해주고 응원해준 고마운 선배들이 있고,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환자들이 있는 착한 도시에서 그가 ‘희망의 증거’ 로 우뚝 서는 그 날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출처: 서울아산병원                                                                                                           

 Storytelling Writer   혈액내과  윤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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