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옹 선사어록
스님은 어느 날 대중을 모아 놓고 일상의 정진을 낱낱이 물은 다음 이와 같이 말했다.
모름지기 대장부의 마음을 내고 결정된 뜻을 세워, 평생에 깨치거나 알려고 한 모든 법과 문장과 언어삼매(語言三昧>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던져버리고 다시는 집착하지 마시오. 한번 앉으면 그 자리에서 팔만 사천의 온갖 생각을 끊고, 본래부터 참구(參究)하던 화두를 한번 들면 놓지 마시오.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어떤 것이 본래 면목인가?' '어떤 것이 내 성품인가?' '어째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이런 화두를 들되, 마지막 한 마디를 힘을 다해 드시오.
화두가 앞에 나타나면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 고요한 곳에서나 시끄러운 곳에서나 한결 같은 것이오. 이 경지에 이르면 다니거나 멈추거나 앉거나 눕거나 옷 입을 때나 밥 먹을 때나 언제 어디서나 온 몸은 하나의 의심덩이가 됩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부딪치고 또 부딪쳐 몸과 마음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그것을 똑똑히 참구하시오. 화두 위에서 그 뜻을 헤아리거나 어록(語錄)이나 경전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지 말고, 단박 깨뜨려야 비로소 집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오. 만약 화두가 들어도 들리지 않아 냉담하고 아무 재미가 없으면, 낮은 소리로 서너 번 연거푸 외워 보시오. 문득 화두에 힘이 생기게 됨을 알 수 있을 것이오. 그런 경우에 이르면 더욱 힘을 내어 놓치지 않도록 하시오.
여러분이 저마다 뜻을 세웠거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면서, 용맹 정진하는 가운데에서도 더욱 더 용맹 정진하면 갑자기 탁 터져 백천 가지 일을 다 알게 될 것이오.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은 이십 년이고 삼십 년이고를 묻지 말고 물가나 나무 밑에서 성태(聖胎)를 기르시오. 그러면 그는 금강권(金剛拳)도 마음대로 삼켰다 토했다 하며, 가시덤불 속도 팔을 저으며 지나갈 것이고, 한 생각 사이에 시방세계를 삼키고 삼세의 부처를 토해낼 것이오.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야 그대들은 비로소 법신불(法身佛)의 갓을 머리에 쓸 수 있고, 보화불(報化佛)의 머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못하다면 밤낮을 가리지 말고 방석 위에 우뚝 앉아 눈을 바로 하고 '이 무엇인가?' 의 도리를 참구하시오.
재(齋)를 올린 뒤 스님은 법상에 올라 한참을 잠잠히 있다가 말문을 열었다. "여러? 불자들, 알겠소? 여기서 당장 빛을 돌이켜 한번 보시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등은 본지풍광(本地風光)을 밟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면 조그만 갈등을 말하겠으니 자세히 듣고 똑똑히 살피시오.
사대(四大)가 모일 때에도 이 한 점의 신령스런 밝음은 그에 따라 생기지 않았고, 사대가 흩어질 때에도 그것은 무너지지 않소. 나고 죽음과 생기고 무너짐은 허공과 같거니 원친(寃親)의 묵은 업이 지금 어디 있겠소. 이미 없어진 것이라 찾아도 자취가 없고 트이어 걸림 없음이 허공과 같소. 세계와 티끌마다 미묘한 본체요, 일마다 물건마다 모두가 주인공이오. 소리와 모양이 있으면 분명히 나타나고 모양과 소리 없으면 그윽히 통합니다. 때를 따라 당당히 나타나고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묘하고 오묘합니다. 자유로운 그 작용이 다른 물건 아니고 때를 따라 죽이고 살림이 모두 그것의 힘이오. 여러 불자들 알겠소? 만약 모르겠다면 이 산승이 불자들을 위해 알도록 하겠소,"
죽비로 탁자를 치면서 한번 할 을 한 다음 이와 같이 말했다.
"여기서 단박에 밝게 깨쳐 현관(玄關)을 뚫고 지나가면, 삼세의 부처님과 역대 조사(祖師)와 천하 선지식의 골수를 환히 보고, 그분들과 손을 마주 잡고 함께 다닐 것이오"
또 한번 죽비로 탁자를 친 뒤 말을 이었다.
"이로써 많은 생의 부모와 여러 겁의 원친(寃親)에서 뛰어나고, 세세 생생(世世生生)에 함부로 자식이 되어 어머니를 해치고 천한 이를 원망한 일에서 뛰어나시오. 이로써 저승과 이승에서의 온갖 원친에서 뛰어나고, 지옥의 갖가지 고통받는 무리에서 뛰어나시오. 이로써 괴로워하는 축생의 무리에서 뛰어나고, 성내는 아수라의 무리에서 뛰어나시오. 이로써 인간의 교만한 무리에서 뛰어나고, 천상의 쾌락에 빠져 있는 무리에서 뛰어나시오"
죽비를 내던지고 이렇게 말을 맺었다.
"기슭에 닿았으면 배를 버릴 것이지 무엇 하러 다시 나루터 사람에게 길을 묻는가"
출처: 화계사